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싱가폴 슬링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남통분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fff '''응이암통분{{{-2 (Ngiam Tong Boon, 嚴崇文)}}}[* 또는 응얌 똥 분. 국내 발음대로 읽으면 엄숭문. 이름 첫머리의 Ng 표기에 대해서는 [[오(성씨)]]와 [[응우옌]] 문서를 참조. 표기가 정착하기 전에 국내에 들어온 이름이라 니암통분, 남통분의 표기가 난립한다.)], [[바텐더]]'''}}} || [[1915년]] [[싱가포르]]에 위치해 있는 [[래플스 호텔]]{{{-2 (Raffles Hotel)}}}의 롱 바{{{-2 (Long Bar)}}}[* 래플스 호텔의 2층에 위치해 있는 [[바(술집)|바]]로, 바 테이블이 매우 길쭉해서 붙여진 이름이다. 땅콩을 집어먹고 남은 껍데기를 바닥에 버리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.]의 응이암통분{{{-2 (嚴崇文)}}} 바텐더가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. 당시 싱가포르의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관습이 있었고, 때문에 실제로도 여성들은 외출 시 음주할 수 없었다. 이런 여성들을 위해 응이암통분{{{-2 (嚴崇文)}}} 바텐더가 겉으로는 붉은색을 내어 과일주스처럼 보이면서도 여성들의 입맛에 맞도록 상큼하면서도 단 맛을 내는, 한 마디로 여성들도 몰래 음주할 수 있는 음료를 고안해냈는데, '''이게 바로 싱가폴 슬링이다.''' [* 다만 이는 래플스 호텔의 주장이며, 그런 관습의 실존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도 있다. 싱가포르가 식민지이던 빅토리아 시대에 그런 경향이 있었냐에 대한 의문. 대표적으로 [[빅토리아 여왕]]부터 애주가로 알려져 있다.] 이후 싱가폴 슬링은 성별 상관없이 큰 인기를 얻게 되고, 마침 이 시기에 래플스 호텔 마찬가지로 유명세를 펼치고 있던 중이였는지라 '''[[찰리 채플린]], [[서머셋 몸]], [[조지프 콘래드]], 더글라스 페어뱅크''' 등 수많은 유명인사들에게 인지도를 쌓게 된다. 제작 연도가 [[1915년]]이라 알려져 있긴 하지만,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[[1914년|1915년]] [[1913년|이전]]에 등장했을 거라 추정한다. 응이암통분{{{-2 (嚴崇文)}}} 바텐더가 별세한 연도도 마찬가지로 1915년인데, 보통 시그니처 칵테일, 그것도 '''호텔 바 안에서 내놓을 시그니처 칵테일'''의 경우라면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임시 레시피들과 시음 작업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적어도 1년 이상은 필요하다. 그런데 만일 응이암통분{{{-2 (嚴崇文)}}} 바텐더가 [[1915년]]에 싱가폴 슬링을 선보인 것으로 계산한다면, 레시피를 완성하는데 '''1년도 되지 않아 완성한 것'''이 되어버린다. 그러니, 아마도 1915년보다는 이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